54년 만에 이룬 식량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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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만에 이룬 식량 독립
  • 김광태
  • 승인 2019.10.31 14: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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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논 560여 평을 임차해 농사를 짓고 오늘 첫 수확을 했다. 태어난 지 54년만이다. 물론 혼자의 힘이 아닌 청년농부의 도움을 받아 모 심고 드디어 오늘 수확 한 것이다. 항상 아버지가 “너희 쌀 안 떨어 졌냐.”라고 물으신 뒤에 차에 실어 주던 쌀, 부모님이 항상 차에 실어주던 쌀을 오늘 수확하니 무엇인가 모를 명치끝에 묵직함이 전달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다가온 논은 매실을 심었던, 마사토가 섞인 땅이어서 물을 대면 푹푹 빠지고 비만 오면 둑이 유실되는 그런 논이었다. 농기계도 들어 갈 수 가 없었다. 드디어 6월 어느 날 청년농부의 벼 모종을 빌려와 모내기 작업을 했다. 모내기는 사람이 들어 갈수도 기계가 들어 갈수도 없어 산파하기로 하고 560여 평의 논에 모를 뿌렸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은 ‘이게 뭐하는 거냐.’며 얼굴을 찡그리고 지나갔다. 예로부터 농사를 짓던 방법과 다르고 모를 흩뿌리니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었다.

모를 심고 나면 이제부터는 물 관리가 중요하단다. 천수답인 탓에 위에 있는 논 물을 받아 써야한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위에 가득 차 있는 윗 논 물고를 터서 논에 물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윗 논 주인이 찾아와서 “자네처럼 농사지으면 윗 논 사람들은 농사를 못 지어 먹는다.”이야기를 들어보니 비료를 주거나 제초제를 주게 되면 3일은 물을 가둬 놔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바로바로 물을 빼갔던 것이다. 얼마나 화가 났을까 싶기도 했다.

누군가 그랬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그래서인지 문득 문득 자라있는 모를 보게 되고 어느 날에는 꽃대가 올라와 제법 벼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논둑 제초작업을 하고 있던 내게 지나가던 어느 노인은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농사 잘 지었네, 잘 졌어”하셨다. 아마도 봄날에 모를 뿌리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쓰셨던 그분 이었던 같다.

누렇게 물들고 고개 숙인 벼가 수확기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잦은 태풍에 비바람에 맞서며 각종 병해충과 폭염을 이겨내고 오늘 수확의 기쁨을 안겨줬다는 생각에 기쁘다. 또한 문득 매년 구부러진 허리를 이끌고 해왔을 부모님이 생각나는 가을 어느 날, 54년 만에 식량독립을 이룬 날 이었다.

땅처럼 정직한 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땅에 씨를 뿌리고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무성히 자라 꽃이 피고 열매 맺고 또 심고 자라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기적과 섭리를 보며 그동안 무엇을 위해 허둥대며 살았나 싶다.

농사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게으른 초보 농사꾼의 즐거운 수확이었다.

/장산리 김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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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진 2019-11-02 13:47:30
그 쌀 다 혼자 드실라우~? ㅎㅎ 고생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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