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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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 김광태
  • 승인 2019.10.0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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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여기 어떻게 들어 왔당가?”
“봄 되면 농사 시작 할라고요”

사는 이야기는 형식없이 독자들이 보내주는 편지글, 산문, 생활 속 이야기를 게재하는 '란' 입니다. 한사람의 경험과 통찰이 오롯이 담긴 이야기는 어떤 뉴스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다음글은 익명을 요구하셔서 익명으로 게재합니다. 

2002년 12월, 다니고 있던 농과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마친 후 나는 광주의 한 산업단지에서 일하게 되었다. 농사를 시작하기 위한 작은 밑천이라도 마련해 볼 생각이었다.

내가 하게 된 일은 기아자동차 수출 용역이었다. 보통의 자동차는 완성차 형태로 수출 되지만 완성차의 수출입은 관세와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반면에 CKD(completely knock down)라고 해서 부품형식으로 수출하여 현지에서 재조립하는 방식은 관세와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래서 내가 일한 공장은 완성된 차를 다시 분해하여 컨테이너에 실어 보내는 일이었다.

아침 8시 반부터 밤까지 공장 에어 컴프레셔(공기압축기)와 임팩(볼트를 조이고 푸는 공구)은 한 시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각자가 맡은 일은 한 치의 틀림이 없도록 작업을 마쳐야한다.

처음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혼도 많이 나고 내가 일을 틀리게 해버리면 다음 파트 작업이 꼬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일을 해대다 보면 잠깐 쉬는 시간에 담배하나 피울 때가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힘든 노동일이었지만 돈벌이가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심정에 밤 10시까지 잔업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 물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다음 날 손이 붓고 저리고 뻐근하고 아려서 밥숟가락을 들면 수전증처럼 손을 떨었다. 그런데 희한한 게 출근해서 일이 시작되면 아프고 말고를 느끼고 생각할 새도 없이 작업을 하니까 그냥 그렇게 하루를 버티게 되는 것이었다. 그 때 느낀 것이 ‘아! 골병든다더니 노동자들이 이렇게 해서 골병드는구나.’ 싶었다.

공장의 점심시간은 식사를 한다기보다 뱃속에 음식물들을 ‘집어 넣는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급식판에 밥과 반찬, 국을 담아 냠냠 먹는 사람은 나처럼 갓 입사한 새내기들이었고 짬밥이 되는 사람들은 큰 사발에다가 밥과 반찬을 한데 담아서 고추장 얹히고 쓱닥쓱닥 비벼서 후다닥 식사를 마쳤다. 얼마나 빠른지 채 5분이면 의자를 박차고 나간다. 그리곤 담배 한 대 물고 낮잠을 자는 것이다. 휴게실이 따로 없으니 종이박스나 합판 따위를 주워다 거기 깔고 눕는 것이다.

나는 점심시간 때 주어진 쉬는 시간에 공장 마당에 나가 햇볕을 쬐었다.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공장안에서 이렇게라도 햇볕을 쪼여줘야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러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내게 “자네는 여기 어떻게 들어 왔당가?”하고 물었다. 나는 “봄 되면 농사 시작 할라고요. 집안 형편이 어렵고 해서 여그서 얼매라도 벌어각고 갈라고요.”라고 답했다.

스물셋 젊은이가 공장에서 일한 돈으로 농사를 하려한다는 말에 다들 희한하다고도 하고 대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또 어떤 분은 자기도 시골서 농사짓다 빚만 졌다면서 자기 실패사례를 강의하듯 설명하기도 하고, 농사 시작할 때 이런저런 필요한 것이 많을 테니 1톤 트럭이라도 하나 생기면 와서 챙겨가라고 자기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넉 달을 일해서 돈을 모았다. 만원 쓰는 것도 아까워서 아끼고 또 아꼈다. 좀 더 일하면 꽤 모을 것 같긴 했지만 농사철에 농사를 개시하지 못하면 1년이 지나기 때문에, 그리고 차디찬 공장안에서 시간을 소비하기 싫어서 애초의 다짐대로 공장을 나왔다.

100만원을 주고 헌 트럭 하나를 사서 광주에서 전남 곡성으로 넘어가는데 일부러 고속도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타고 천천히 달렸다. 물론 헌 트럭이기도 했거니와 따스한 봄기운을 온 몸에 스미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주친 들판의 논에는 새파란 가을보리들이 어찌나 그리 예쁘게 자라던지. 물론 예전에 식량증산이 농업의 가장 큰 목표였던 때처럼 이모작을 많이 하진 않지만 군데군데 보리를 심은 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논둑에는 여린 쑥과 고만고만한 풀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올 때 연두빛 가을보리들은 휑한 들판을 초록으로 채워주는 존재들이었다. 저 보리들을 직파할 때만해도 춥고 눈 내리는 겨울이었는데 때가 되니 이렇게 예쁘게 자라나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안하지만 어릴 때 정월달을 지내면서 보리밟기를 하면서 동네 형, 누나들과 뛰놀고 다녔는데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되어 보리밭을 지나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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